AI에게 회로 설계를 맡겨도 될까? — 요구사항부터 PCB까지, 단계별로 맡기고 사람이 꼭 확인할 것
요즘 AI는 프롬프트 몇 줄로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게임도 만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전자회로 설계도 AI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맡기면 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맡길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만 "한 번에 다" 맡기면 위험합니다. 결과가 그럴듯하게 나오는 것과, 그 결과를 믿고 실제 보드로 만들어도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12V를 5V로 낮추는 전원 회로를 예로 들어, 설계 단계별로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사람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예제 회로 | 12V → 5V · 최대 1A 벅 컨버터(전압을 낮추는 전원 회로), 4층 PCB |
| 쓰는 AI | 컴퓨터 화면과 프로그램을 직접 다루는 코딩 에이전트(Codex, Claude Code 등) |
| 쓰는 프로그램 | 회로 시뮬레이터(PSpice, LTspice 등), PCB 설계 도구(EasyEDA, KiCad 등) |
| 핵심 | AI는 일꾼, 판단과 검증은 사람 |
벅 컨버터 — 높은 전압을 낮은 전압으로 바꾸는 전원 회로. 휴대폰 충전기 안에도 들어 있어요.
데이터시트 — 부품 회사가 낸 "사용 설명서". 부품값을 정하는 계산식과 배치 요령이 다 들어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 실제로 만들기 전에 컴퓨터 안에서 회로를 돌려 보는 것.
PCB — 부품을 꽂고 납땜하는 초록색 기판. 그 위의 길(배선)까지 설계해야 완성입니다.
한눈에 보기 — AI가 하는 일, 사람이 하는 일
1. 요구사항 — "무엇을 만들지"는 사람이 정한다
현업에서도 설계는 늘 요구사항에서 시작합니다. "12V를 받아 5V로, 최대 1A, 4층 기판"처럼 큰 조건을 먼저 정하고 AI에게 빠진 조건이 없는지 물어보면, 출력 전압 오차·리플·효율·동작 온도 같은 항목을 표로 꼼꼼히 채워 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AI가 제안한 항목을 전부 쓸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수업용 시제품인지, 실제 제품인지에 따라 필요한 수준이 다르니 범위는 사람이 정합니다.
2. 부품 선정 — 계산식이 적혀 있다고 맞는 건 아니다
AI에게 조건에 맞는 전원 IC 후보를 찾아 달라고 하면 후보 몇 개와 선정 근거를 비교표로 정리해 줍니다. 하나를 고른 뒤에는 데이터시트의 설계 순서와 계산식에 따라 코일·다이오드·커패시터 값을 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라믹 커패시터가 실제 전압에서는 표기 용량보다 작아지는 특성(DC 바이어스)까지 챙기는 걸 보면 꽤 꼼꼼합니다.
그래도 계산식이 맞는지, 데이터시트 조건을 제대로 넣었는지, 부품 정격(견딜 수 있는 전압·전류)이 충분한지는 사람이 한 번 더 봐야 합니다. 부품을 고를 때는 제조사가 시뮬레이션 모델과 설계 자료를 잘 제공하는지도 중요한 기준입니다. 다음 단계에서 AI가 바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시뮬레이션 — 실패했을 때 "왜"를 판단하는 건 사람
코딩 에이전트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직접 조작해서 회로를 꾸미고, 테스트를 돌리고, 그래프와 표가 들어간 결과 보고서까지 만들어 줍니다. 엔지니어에게 가장 귀찮은 문서 작업을 덜어 주는 부분이라 체감이 큽니다.
문제는 테스트가 실패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부하가 갑자기 바뀌었을 때 전압이 늦게 돌아온다"는 결과가 나오면, 원인이 제어 회로(보상기)를 너무 조심스럽게 설계한 탓인지 다른 문제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아래 그림처럼 안정성 여유(위상 여유)는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원인을 짚어서 "응답을 더 빠르게, 그래도 안정성 여유는 충분히"처럼 방향을 정해 주면 AI가 부품값을 다시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반복합니다. 리플처럼 일부 항목이 아슬아슬하게 남으면, 실제 제품이라면 원인을 더 좁혀서 확인해야 합니다. "대충 통과"로 넘기는 판단도 사람이 책임지고 내려야 합니다.
4. 회로도·PCB — 연결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최근 에이전트는 PCB 설계 프로그램도 직접 다룹니다. 앞에서 고른 IC·커패시터·코일을 찾아 배치하고, 선을 잇고, 풋프린트(부품이 앉을 자리 모양)까지 바꿉니다. 다만 결과 회로도가 우리가 평소 그리는 방식과 다르게 나올 수 있어, 우리 스타일을 예제로 주거나 스킬로 만들어 두면 좋아집니다.
PCB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부품이 다 올라가고 선이 다 이어져 있으면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원 회로는 부품 배치가 성능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법은 역할을 나누는 것입니다. 스위칭 부품처럼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배치는 사람이 직접 하고, 실크 정리·남은 배선 같은 마무리는 다시 AI에게 넘깁니다. 마지막 검토와 발주 결정은 당연히 사람이 합니다.
화면 녹화를 빠르게 돌려 보면 뚝딱 끝나는 것 같지만, 이런 작업은 AI가 실제로 일하는 시간만 몇 시간, 사람이 확인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가까이 걸릴 수 있습니다. 토큰(사용량)도 많이 쓰니, 처음에는 작은 회로로 연습하고 단계마다 결과를 확인하며 진행하세요.
5. 단계별로 맡기는 프롬프트
한 번에 "회로 설계해 줘"라고 하지 말고, 단계를 나누고 단계마다 멈추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 안만 바꿔 쓰세요.
간단하게 — 요구사항 빠진 것 찾기
조금 더 구체적으로 — 근거가 보이는 부품 선정
제대로 맡기기 — 단계마다 멈추는 설계 진행
6. 수업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전원 회로가 아니어도 똑같습니다. 아두이노 수업에서 LED·센서 회로를 AI에게 맡길 때도 "AI가 계산하고, 학생이 검증한다"는 순서로 진행하면 좋은 교재가 됩니다.
AI가 계산한 저항값을 학생이 옴의 법칙으로 직접 검산하고, 가까운 표준 저항을 고르게 합니다.
검산팅커캐드 같은 온라인 시뮬레이터에서 돌려 보고 나서 실제 브레드보드로 옮깁니다.
확인"기준값 / 결과값 / 통과·실패" 표를 학생이 채우게 하면 검증 습관이 생깁니다.
기록AI가 만든 회로에 일부러 틀린 곳을 하나 넣고 찾기 활동으로 바꿔도 좋습니다.
활동수업용 — 아두이노 회로를 AI와 함께 검증하기
정리 — AI가 잘할수록 "판단하는 실력"이 중요해진다
AI는 부품을 찾고, 데이터시트를 읽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PCB까지 상당 부분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실제 보드에서는 잡음, 부품 편차, 온도처럼 시뮬레이션에 없던 일이 생깁니다. 그때 "이 결과를 믿어도 되는가, 왜 이렇게 됐는가"를 판단하려면 결국 회로 지식과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필요합니다. AI가 발전할수록 AI의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실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댓글
댓글 쓰기